老子 제1장 - 도라 말할 수 있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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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즉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의 常은 영원
불변이 아닌 변화의 지속인 영원일 뿐, 영원불변은 인간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노자의 도는 천도의 근원으로서 천지의 운행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킨다. 그래서 도는 천지보다도 먼저 있는 것이다.
-조세프 니덤 의 노자사상의 이해에서는 노자 도덕경은 인간의 이성과 논리까지
포괄적으로 암묵함으로 서양의 과학과 기술 조우의 연역적 귀납까지 이루진 못했다
다고 보았다.
이것은 동양인의 사고내의 언어에 대한 단순한 정의(언어적 유희로 인한 집착)
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도가에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서양의
언어적 논리에 통한 명제의 귀납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과학적 발전으로 이어진 것
과는 대조적인 것이 되겠다.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정의 되지 않은 태초를 말할 수 있고 이름 있게 된다는
것은 만물의 생겨난다는 것(어머니)으로 되겠다.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는 것으로 미묘한 본체를 살피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핀다.
- 이름이 지어진 사물에는 그 사물에 대한 물욕이 강하면 그 이면의 묘한 세상
(심오한 뜻) 보기 어렵다. - 이것은 나중에 도가철학과 불교의 一體開苦의
사상과 그 뜻이 일맥 상통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일체개고란 모든 만물은 다 고통이요 그 고통은 모든 물욕에 대한 고통이므로
그 집착의 멸집을 일체개고라 한다.
이는 불교와 사상성 동질성이 이미 도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접목이 가능한
것이 되겠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며 둘 다 현묘한 것이라고 한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미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다.
-이처럼 이 둘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다. 즉 물욕과 무욕이 같아지는 세계가
검을현 즉 깊은 세계다. 그러나 검을현 그 깊은 세계라 하면 또 집착하게 되
므로 다시 검을현으로 표현한 것은 깊은 세계에 대한 또 다른 깨우침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 묘함 나오는 문이라 정의 한 것이다.
★ 서양의 플라톤의 사상의 근간은 언어를 통한 현세적인 물질 변화관은 가치
를 두기 어렵고 결국 현실의 세계보다는 보다 높은 이상향인 이데아의 세
계에 가치를 두는 시각이었고 노자의 사상은 그렇게 변화하는 현실의 세계
에 가치를 부여하는 서로 다른 시각이 결국 동,서양의 각기 다른 가치관의
철학적 큰 물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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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해설 별첨
죠셉 니덤 [Joseph Needham, 1900.12.9~1995.3.24]
영국의 생화학자·과학사가. 발생생화학(發生生化學)의 선구자이며
생물학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주요 저서로 《Chemical Embryology》 등이 있다.
국적 영국
활동분야 생화학, 과학사
주요저서 《Chemical Embryology》(3권, 1931)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F.G.홉킨스의 지도를 받고, 졸업 후 동 대학의 실험
조수를 거쳐 1933년 강사가 되었다.
1942∼1946년 영국 과학사절단의 단장 겸 영국대사관 고문으로 중국에 체재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자연과학부장을 역임하였다.
1951년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와 리옹대학교 객원 교수를 거쳐 중국 국립베이징중앙
연구소 소원을 역임하였다. 발생생화학(發生生化學)의 선구자이며 생물학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아내 메리도 생화학자이다.
주요 저서로 《Chemical Embryology》(3권, 1931) 등 다수가 있다.
생화학자로서 일찍이 과학 전 분야에 걸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사회주의적
이고 진보적이었던 그의 관심을 과학사로 돌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중 1937년에 중국의 유학생들이
런던에 오게 된다. 그들을 통해 중국의 풍부한 문화적 전통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들 중 한사람인 루 궤이전은 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공동연구를 하게 된다.
인쇄술과 나침반 화약 등이 발명되어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과학문명이 발달했던
중국이 산업혁명에서 서구에 왜 뒤지게 되었는지가 그의 첫 번째 의문사항이었다.
니덤은 이 루 궤이전과 함께 공동으로 "중국의 과학과 문명" 이란 책을 집필하면서
과학적 시각을 통해 바라본 중국인들의 사상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다.